내부 “부당개입 관행 개선을” 당국 “미확인 사안 유출 금지”
국정조사까지 예고된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에 대한 경찰 고위층의 은폐 의혹이 나오면서 경찰 조직이 술렁이고 있다. 이번 기회에 수사의 원칙과 정치중립성을 담보할 제도적 장치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황정인 서울 강남경찰서 수사과장은 21일 “경찰은 2007년 한화 사건 때 충분히 반성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당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 폭행에 대한 수사가 경찰 고위층의 압력에 의해 청탁, 로비, 짜맞추기로 왜곡됐던 것으로 드러났지만 경찰 고위층은 징계 통보 선에서 사실상 면죄부를 받았다. 황 과장은 “부당한 수사 개입을 뿌리 뽑는 유일한 방법은 고위층의 부당한 개입을 세상에 드러내 당사자가 회생 불능의 파멸을 맞는다는 전례를 확립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영진 마산 동부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장은 페이스북에 “국정원 사건을 계기로 그간 무분별하게 이뤄진 경찰 내부의 수사 개입, 부당 지시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면서 “현재 범죄수사규칙(경찰청 훈령) 제15조의 수사지휘는 서면 수사지휘의 대상과 절차를 규율하고 있을 뿐 그 대상, 범위, 절차, 한계가 상세히 규정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장기적으로는 수사부서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것, 예를 들어 수사차장제 도입, 광역수사체제 도입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고위층이 수사를 압박했다는 주장에 경찰 내부의 탄식과 분노가 들불처럼 일어난 것이다.
경찰 윗선의 부당 수사 개입을 폭로한 권은희 현 송파경찰서 수사과장 역시 지난달 사석에서 “국정원 사건은 경찰 내 좌우 싸움이 아닌 신구 싸움”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일부에서 제기한 조직 내 사상·이념 대결이 아니라 정치권 눈치를 보며 물타기, 줄서기 하는 경찰 지휘부와 수사의 원칙을 고수하려는 젊은 경찰 세력 간의 갈등으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경찰은 불거진 의혹에 대해 “언론 내용에 대해 수사 실무자에게 보도 경위와 판례를 묻거나 ‘확인되지 않은 사안을 비공식적으로 언론에 유출하지 말라’는 취지로 주의를 준 사실은 있다”면서도 “사건을 축소, 은폐했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이성한 경찰청장은 지난 20일 오전 지휘부 티타임에서 언론 보도 내용을 공유하고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비할 것을 주문했다. 권 과장에 대한 감찰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한편, 인터넷에서는 양심선언을 한 권 과장을 향한 응원이 줄을 이었다. 권 과장을 응원하는 서명운동이 벌어진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는 21일 자정 현재 6000명이 넘는 누리꾼이 지지 글을 남겼다. “조직 내 따가운 시선 속에서 진실을 말하는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국민을 위한 내부 고발자는 국민이 응원합니다” 등 칭찬 일색이다.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2013-04-22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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